전체 글26 [유럽.미국의 역사]십자군 전쟁 십자군 전쟁은 중세 유럽에서 일어났으며 11세기부터 13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발생했다.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과 그 주변지역을 비롯한 중동 지역을 향해 출발한 유럽의 기독교 신도들의 군사적 움직임을 이야기한다. # 십자군전쟁 13세기가 끝나 갈 무렵에 교회세력은 쇠토의 양상을 보인다. 그 계기가 된 것은 교회세력뿐만 아니라 세속군주, 봉건귀족, 상인 등의 합세로 200년간 지속된 십자군전쟁이었다. 십자군전쟁의 발단은 셀주크 투르크의 예루살렘 점령이었다. 이슬람의 위협에 직면한 동로마제국 황제가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게 구원을 요청하였고, 1096년 십자군전쟁이 시작되었다. 십자군전쟁의 명분은 성지 탈환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동서교회의 통합 및 기독교 세력의 확장도 추구되었다. 그러나 세속 통치자들의 .. 2023. 6. 16. [유럽.미국의 역사]중세 사회의 역동성:상업과 도시의 성장 중세 시대는 서양 역사에서 5세기에서 15세기까지 이어진 시기로, 여러 사회적 변화와 역동성이 일어났다. 중세 초기에는 로마 제국의 붕괴로 인해 침체기를 겪었으나, 이후 농경 기술의 발전과 신호로우적인 변화 등이 중세 사회의 특징이었다. 동방과의 무역이 활발해지고, 상업 도시가 형성되었다. 특히, 지중해와 동방 사이의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도시의 중요성이 증가했다. # 중세 사회의 역동성 : 상업과 도시의 성장 봉건사회의 제도적 틀이 확립되면서 중세 유럽은 새로운 발전기를 맞이했으며,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 속에서 문화도 발전했다. 10세기 말경 봉건사회가 정착되면서 서유럽에서는 농업기술상의 혁신이 나타나고 농업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인구가 늘어났다. 이에 따라 11세기에는 대대적인 개간운동이 일어나.. 2023. 6. 15. [유럽.미국의 역사]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중세 유럽의 탄생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복합적인 역사적 현상을 지칭한다. 이 이동은 로마 제국의 정치적 불안정과 외부 침략, 그리고 토착 군사력의 약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게르만족들이 로마 제국의 영향력이 약해진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서로 다른 게르만족들이 서구 유럽에 퍼지면서 유럽의 정치, 사회 및 문화적 상황이 크게 변화하였다. #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중세유럽의 탄생 로마제국 몰락 이후 유럽 역사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른 것은 게르만족이었다. 게르만족은 로마의 전성기에 라인 강과 도나우 강 너머에서 부족제적인 원시생활을 영위하다가 로마가 쇠퇴하는 3세기경부터 점차 로마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4세기 중엽 게르만의 여러 부족은 중앙아시아의 훈족, 곧 흉노족의.. 2023. 6. 14. [유럽.미국의 역사]그리스.로마의 유산 서양인들에게 그리스와 로마는 문명과 정신의 고향으로 기려지고 있다. 그리스는 폴리스의 정치적 발전과 쇠퇴를 경험하면서 인간적이고 합리주의적이며 현실주의적이면서도 이상주의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 그리스. 로마의 유산 특히 그리스문화는 신화를 통해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오리엔트의 선진문화를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그리스문화가 보다 자유롭고 인간적인 성격의 새로운 문화로 창출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리스인들의 인간중심적인 태도가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자유로운 감수성을 표출시켰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인들은 주변 세계에 대한 탐구는 철학, 수학, 역사 등의 제반 학문체계를 수립시켰으며, 감정의 표현 및 미에 대한 추구는 희곡, 시, 음악과 건축 등 제반 예술 분야에서 많은 .. 2023. 6. 13. [유럽.미국의역사]로마제정의 수립과 전개 기원전 27년에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 존엄자)가 되어 로마 제정을 수립했다. 로마제정의 수립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제일의 시민, 곧 프린켑스(princeps)를 자처하면서 공화정을 회복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는 원로원의 세력을 자신에게 복속시키고 군사권과 재정권을 장악한 독재자였다. 그는 정복전쟁을 중단하고 국경 방비에 힘쓰며, 세제개혁, 속주 통치체제의 정비, 곡물의 무상분배 등을 실시하고, 대형경기장인 콜로세움, 기념비, 고층의 공동아파트, 공동목욕탕과 같은 대규모 공공건물을 건설하는 등 내치에 힘썼다. 또한 친위대를 설립하여 치안유지에 주력했다. 이후 약 200년 동안 풍요와 사회적 안정이 유지된 로마의 평화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는 위장된 평화에 불과했다. 중소농.. 2023. 6. 12. [유럽.미국의 역사]로마공화정의 전개 로마 공화정은 로마의 초기 정치 체제로, 약 509년부터 27년까지 약 482년간 지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로마는 공화제로서 국가를 운영하며,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와 공론장, 균형 있는 권력분립의 원리를 일부 포함하고 있었다. 이러한 공화제는 로마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전환한 509년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 1. 로마공화정의 전개 ① 로마 로마는 기원전 8세기경에 라틴족이 세운 조그마한 폴리스로 출발했다. 6세기말 공화정을 수립한 로마인들은 기원전 3세기 초에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였다. 이어서 기원전 3세기 중엽부터 약 100년에 걸쳐서 진행된 포에니전쟁으로 카르타고를 점령하여 기원전 2세기 중엽에는 서부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였다. 기원전 1세기말에는 이집트를 정복하여 유럽, 아시아, .. 2023. 6. 10. [유럽.미국의 역사]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과 헬레니즘 알렉산드로스 대왕(알렉산더 막도 노스)은 고대 그리스의 왕자로, 전설적인 군인 및 정치가였다. 그는 아버지인 막도 노스 3세를 계승하여 많은 정치적 및 군사적 도전을 이끌었고, 막도 노스 왕조를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1.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과 헬레니즘 마케도니아는 안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에 동방으로 진출하여 기원전 330년경에는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의 문화는 오리엔트에 널리 전파되어 헬레니즘문명을 발달시켰다. 알렉산드로스는 제국 각지에 그리스인을 이주시키고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도처에 세워서 그리스문화를 보급시켰다. 또한 그리스문화와 이민족문화를 긴밀하게 융합시키기 위하여 그리스인 군인과 정복지 여성들을 집단 결혼시켰고, 수만 명에 .. 2023. 6. 9. [유럽.미국의 역사]폴리스와 고대 그리스문명-2 폴리스(Polis)는 고대 그리스에서 독립된 도시국가를 의미하며, 다양한 형태의 정치 체제가 존재했다. 폴리스 중에서는 민주정을 추구하고 균형을 이룬 경우도 있었지만, 동시에 귀족적인 특성을 유지하거나 군사적인 특색을 가진 경우도 있었다. 1. 폴리스와 고대 그리스문명 2편 폴리스 중에는 철저한 민주정으로 나아간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귀족정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정복민인 도리아인들이 세운 스파르타는 후자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도리아인들은 소수(5~10%)의 시민, 곧 스파르타인을 이루었다. 이들은 피정복민 노예인 헤일로타이(heliotai)와 주변인인 페리오이코이(peri-oikoi) 위에 군림하면서 감시와 탄압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스파르타는 전 시민의 전사화에 입각한.. 2023. 6. 8.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