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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

[유럽.미국의 역사]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중세 유럽의 탄생

by 이쉬하라 2023. 6. 14.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복합적인 역사적 현상을 지칭한다. 이 이동은 로마 제국의 정치적 불안정과 외부 침략, 그리고 토착 군사력의 약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게르만족들이 로마 제국의 영향력이 약해진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서로 다른 게르만족들이 서구 유럽에 퍼지면서 유럽의 정치, 사회 및 문화적 상황이 크게 변화하였다.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중세유럽의 탄생

 

#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중세유럽의 탄생

로마제국 몰락 이후 유럽 역사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른 것은 게르만족이었다. 게르만족은 로마의 전성기에 라인 강과 도나우 강 너머에서 부족제적인 원시생활을 영위하다가 로마가 쇠퇴하는 3세기경부터 점차 로마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4세기 중엽 게르만의 여러 부족은 중앙아시아의 훈족, 곧 흉노족의 서진으로 압박을 받으면서 로마의 영토 안으로 대거 이동했다. 초기의 평화적 이주는 무력침공으로 바뀌면서 게르만 부족들은 로마의 영토 안으로 대거 이동했다. 초기의 평화적 이주는 무력침공으로 바뀌면서 게르만 부족들은 각각의 점령지역에 왕국을 수립하기에 이른다.

 

게르만의 여러 왕국 중 유일하게 존속한 것은 프랑크족이었다. 대부분의 게르만 부족은 장거리로 이동하여 본거지와의 연락이 어려웠다. 반면 프랑크족은 바로 라인 강 이북에 근거지가 있었기 때문에 좀 더 확고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프랑크족의 수장 클로비스 1세가 당시 로마 주민들이 믿고 있던 아타나시우스파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도 그들의 정착에 도움을 주었다.

 

프랑크족은 유럽의 기독교 문화권을 수호하고 방어하는 데 기여했으며 800년에 수립된 서로마제국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732년, 메로빙조 프랑크의 궁재(재상)였던 카롤링조의 샤를 마르텔이 투르와 푸아티에 전투에서 이슬람을 피레네 산맥 이남으로 몰아낸 것이다. 로마 교황 레오 3세는 프랑크족의 최고 실력자 카롤링조의 샤를마뉴를 서로마제국의 황제로 축성하여 서로마제국을 부활시켰다(800). 이런 의미에서 서로마제국의 부활은 고대로마문화의 담지자인 로마교회와 게르만 수장의 제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후 프랑크족은 게르만문화와 로마문화, 그리고 기독교신앙을 융합한 토대 위에서 중세 유럽의 사회와 문화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