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문명은 폴리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폴리스는 그리스문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1. 폴리스와 고대 그리스문명 1편
① 고대 그리스문명
서양문명의 커다란 줄기를 이루고 있는 고전 고대의 그리스문명은 기원전 800년경 성립된 폴리스, 곧 도시국가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그 성원들은 현연 및 지연으로 맺어졌으며 공동체와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하고, 스스로 정치적 관심이 높은 자유 시민임을 자부했다. 또한 이후 유럽인들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동양의 전제군주국가와는 상이하게 민주정치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류를 찾고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제반의 동방문명들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그리스 지역의 문화적 발전을 자극했다. 동시에 그리스의 폴리스문화가 '노예'라는 원동력 공급자들에 의해 유지되었다는 역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폴리스 수립 이전에도 지중해와 에게 해 유역에서는 그리스문명의 선주문명이라 할 수 있는 에게문명이 발달했다. 에게문명은 크레타문명과 그 문명을 멸망시킨 미케네문명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 중 크레타 사회는 소아시아 계통의 크레타인들에 의해서 기원전 3000년경부터 세워졌다. 크레타인들은 오리엔트적인 강력한 왕권에 입각했으면서도 비교적 자유롭고 평등하며, 풍요롭고 세련된 청동기문명을 반전시켰다. 이 문명은 기원전 15세기에 북쪽에서 이주해 온 인도유럽어족의 미케네 인들에 의하여 멸망했다.
미케네 인들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그리스 본토에 침입하여 중부 그리스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기존의 청동기문명과 자신의 전사적 성격을 융합한 웅장한 성채를 구축하고 여러 왕국을 세웠다. 미케네의 왕권은 포도와 올리브 생산 등 집약농업과 목축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오리엔트의 전제군주권력에 비하여 힘이나 규모가 훨씬 더 작았다. 미케네 사회는 기원전 13세기 중엽 동지중해, 혹은 소아시아 서부해안에 진출하면서 트로이와 충돌했다. 그러나 기원전 1100년경 북쪽에서 남하한 도리아인들은 미케네 사회를 정복하고 문명을 파괴하면서 무질서 상태를 야기했다.
② 폴리스
폴리스는 미케네문명이 파괴된 이후 무질서 상태에서 안전을 위하여 수립된 전사공동체 국가이다. 폴리스는 부족연합의 성격을 띠는 집주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 성원들은 혈연 및 지연으로 맺어졌으며 공동체와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하고, 스스로 정치적 관심이 높은 자유 시민임을 자부했다. 이 중 집주를 주도했던 부족장 들은 대지주 귀족인 동시에 자비로 무장을 갖추었던 중장기병으로서 정치. 군사적 실권을 장악했다. 그에 비하여 일반평민은 대체로 소규모 자영농이었다.
폴리스체제는 기원전 8세기 후반부터 안정되었다. 이후 그리스인들은 척박한 토지와 건조한 기후로 농경이 용이하지 않았던 그리스 본토를 넘어서, 에게 해의 여러 섬과 소아시아 등 지중해 각지로 진출했다. 그 결과 폴리스체제가 확산되고 지중해세계의 교역이 촉진되었는데, 역사가들은 이 움직임을 식민운동이라 부른다. 식민운동은 폴리스 내부의 수공업 발전을 자극했으며, 이에 따라 평민층오로부터 부유한 농민과 상공업자들이 출현하는 등 사회 변화도 나타났다.
사회변화는 군사 변화와 정치 변화로까지 이어졌다. 먼저 부유한 평민들이 폴스의 방위에 자발적으로 기여하면서, 종래까지 귀족에게 독점되었던 군사적 참여는 주로 중장보병으로 구성된 평민에게까지 확대되었다. 여기서 전술의 변화가 나타났다. 방진밀집부대, 곧 팔랑크스라는 집단전투의 전술이 도입된 것이다. 한편 집단전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화 형제애가 심화되었으며 평민들의 정치참여 기회가 확대되었다. 이는 폴리스의 정치가 귀족정에서 민주정으로 발전해 나아가는 계기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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